라깡, 프로이트


놀러가야지 잡동사니

http://music.naver.com/promotion/specialContent.nhn?articleId=2051

불꺼진 실내에서 잡동사니

문연자에 아무도 없다. 방에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고, 나는 그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아이와 편의점에 가서 사먹은 김밥도 생각하다가, 불을 끈다. 아무 노래나 소리를 내기도 조심스럽고 두려운 분위기가 모니터에서 환하게 밝아온다. 나는 그렇게 캄캄한 중간에 환하게도 밝은 내 분위기를 따라 이러저리 휩쓸린다. 신기한 것은, 어디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주륵, 주르륵. 아니다.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타닥타닥. 그렇지, 어쩌면 작은 개울가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누군가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방 컴컴하게 가리워진 풀숲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다가오는, 그 누군가들이 나는 무섭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립다. 환하게 밝았던 문연자 여덟 대의 모니터와, 천장에 매달린 십 수 개의 형광등에서 맥아리가 풀리는 소리, 이제 컴컴함에 몸을 뉘이는 밝음의 소리, 그리고 나는 세어본다, 조심스럽게, 아침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길어진다는 것은 잡동사니

뭐랄까, 나이가 들어서인지를 확실히 모르겠으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뭔가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늘어지고 길어진다. 예전에는 그래도 순간적인 느낌을 어떻게든 순간적인 느낌으로 잡아채려고 했었다면, 이제는 뭐랄까, 하나의 느낌보다는 이 느낌 들면 그 느낌에서 드는 또다른 느낌으로, 또 같은 식으로 반복되는 것들을 늘여놓고 엮어놓으려고 하고 있달까? 그럼으로써 오히려 좁아지고, 갇힌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보라, 어렸을 적에는(물론 지금도 26세 밖에는 되지 않았으나 그 느낌이라는 것이 아직 26이라기보다 나는 벌써 26이라는 느낌인 것이다)어디서나 잠도 잘 잤고, 뭘로 쓰든 글도 잘 섰고(퀄리티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 아파도 그냥 아픈 것이었지 뭐 별거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네 것과 내 것이 분명해졌으며(무엇보다도!), 잠자리의 푹신함과 베개의 높이, 펜이 굴러가는 감촉, 키보드를 두드릴 때의 느낌 등에 민감해진 것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일까? 말이 길어진 것은? 그야말로 쓰잘데 없는 것에 말이 집중되는 것일까? 이건 굉장히 씁쓸하다.


과제라고 하면 잡동사니

나는 (나)이다. 그러나 (나)만은 아니다.

탕웨이왔숑 잡동사니


小田和正 - 言葉にできない 음악


낙원상가 - 꽃가계家系

낙원상가 - 꽃가계家系

 

책장을 넘긴다 아이는 꽃을 사러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니 아직 꽃집이었는데, 꽃들은 계절을 잃어버린 채로 피어있고 주인은 꽃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이는 꽃을 배달할 주소를 잃어버린 채로 병상에 눕는다 참 좋아했지, 그 집 엄마, 아이가 살아있었으면 지금쯤 나만했겠다고 아이는 회상하고 탁자 위의 꽃은 뿌리가 없는 나무 밑에 지은 오두막집 화단에 피어있던 소문이다 아이가 차에 치어 죽었다는 여자가 가져왔다, 자기가 운영하는 꽃집에서 차를 몰고, 한참을 헤맸다고 했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서 와봤더니 팔팔하시네요, 철이 지났는데도, 꽃이 아직도, 배달된다 아이 앞으로 주문이 밀려들고 아이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이의 소문을 믿지 않는다 사고가 아니었다고, 일부러 시킨 것이었다고 했다, 꽃 배달은, 그렇게 연기되고 여자는 책장을 넘긴다 아이가 계절이 연착되고 있다는 소문을 전하고 있다 오두막집 화단에 나동그라져 있었다고 했다, 우편함이, 꽉 차 있었다고 했다, 통지서로, 교통사고가 났다는, 장면은 넘어간 책장에 딸려 넘어간 책장에 부딪혀 병상에 누워있다 주인은 꽃을 건넨다, 여자가 주문한 것이었다, 아이에게 주려고, 벌써 오래 전에 잊혀진 꽃잎이었다, 책장에 말라붙은 


낙원 상가 - Fashion(+N)ation

낙원 상가 - Fashion(+N)ation

 

옷가게 주인은 가게가 없다

주인을 잃어버린 가게는 몸을 판다

가게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호객한다

주인은 가게 안에 들어있는 옷과

똑같은 옷을 추천하고

옷장에는 옷에 맞지 않는 몸이 걸려있다

몸을 잃어버린 옷은 가게 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똑같은 가게를 찾아 헤맨다

가게에서는 가게 밖의 사람들과 똑같은 주인이

몸을 팔고 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호객한다

 

거리에는 주인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몸을 찾아 헤맨다

옷장에 옷이 늘어간다


별의 탄생

별의 탄생

 

아버지 어렸을 적에는

별끼리 부딪히기도 했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에 돌아보면

소가 놀라 날뛰다가 유산한 송아지를

산 밑에 파묻고 돌아오던 길

유리처럼 부서진 하늘

반짝반짝 빛나는 파편을 주으러

논밭을 가로지르던 날 밤

옆 집 윗집

다른 집 아이를 바꿔들고 내달린 아랫집

어른들 아이들 모두 별을 주으러

호롱불은 밝았던 밤

서울에서 온 새침대기

내다보던 창문으로 돌도 던지고

그러면 어느 집 아버지 할 것 없이

머리 위에서 불벼락이 끊이지 않았던

별은 반짝반짝 환하던 그 시절

 

교신이 엇갈린 전투기와 조종사 탈출용 낙하산과

사람들의 얼굴, 부서진 창문 모두

엿장수 맘대로였다고 했다


정자 잡동사니


한국의 악기 잡동사니


실종자 잡동사니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뷰파인더에서 실종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나와 어울린 사람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찍혀있는 사진에 나의 얼굴은 없었다 나는 누군가가 알아봐주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를 알아봐야 하는 사람이고, 누군가가 남겨주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남겨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그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거기 있다. 나도 그저 여기 있다. 우리는 다른 차원에 머무른다. 끊임없이 교차되는 길 중 나와 나란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순간으로 남을 뿐이다. 알아보기조차 힘든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순간, 허무한 그 찰나, 그것이 바로 나이다. 다만, 아주 밝은 섬광이기를 바란다. 섬광이고자한다. 아니, 어쩌면 어둠, 어쩌면 푸근함. 그 무엇이든, 아주 짙고 깊은 점點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고자 한다.


비디오테이프, 혹은 첫사랑

 

비디오테이프, 혹은 첫사랑


그는 불을 끈다

이중 덧창을 닫고, 커튼을 치고, 그 위에 블라인드까지 내려 눈앞의 손도 보이지 않는 작고 어두운 방에서 촉감으로 밖에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침대 위에 아니, 어쩌면 어둠에 몸을 던진다 그 막막한 촉감에, 모든 자극이 탈색된 적막에 각 신경을 조각내어 하루의 피로를 말린다 그러면 졸리운 눈을 간신히 끔뻑이는 가로등 하나 골목을 밝히고 그 비좁은 골목을 따라 구불구불 멀어지는 기억들에 하루에 두 번 꼭두새벽, 늦은 저녁으로 들어오는 버스가 때마침 도착한다 후진해서 밖에는 나갈 수가 없는 좁다란 골목의 모든 문이 열리고 오라이, 오라이, 되감기는 한 편의 드라마, 차창 안에서 삐걱삐걱 뒤로 물러나는 얼굴들과 고단한 여독을 퉤, 정류장 한 길에 뱉으며 흩어지는 사람들의 얼굴, 어깨에 뭉친 바람 어느 풀 없는 공터에서 먼지 앉은 잔등을 쓸어내리는 그 성마른 손가락을 술로, 더한 황량함으로 씻군다고 모여드는 사람들, 방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주 냄새, 자루에 담겨 두드려 맞던 어느 집 개, 뻘겋게 젖은 천을 아무렇게나 휙 집어던지며 웃던 여자아이, 너 피나, 다리에서 뛰어내린 이웃집 누나 얼굴이 웃고 있었다는 괴담을 듣고 유독 캄캄했던 앞마당 화장실 가는 길, 날카로운 울음소리, 고양이 울음소리는 애기 우는 소리를 닮았다고 하던데, 어디서 누군가가 얻어맞는 소리, 아니, 밤하늘 총총하게 드리운 어떤 촉각이 찢어지는 소리, 어둠이 일어서는 소리, 눈앞에 놓인 희멀건 손 하나, 부스스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리고, 커튼을 걷고, 이중 덧창을 연다 촘촘한 신경 하나하나를 밝히면서 기지개를 켜는 방, 환한 햇살 아래 풀풀 먼지를 풍기며 골목으로, 그 비좁은 틈을 후비고 들어오는 마을버스, 앞마당에 성마르게 널려있는 적막을 찢는 소리, 녹슨 대문을 열어젖히고 누군가 퉤, 침을 뱉으며 들어온다

그는, 아니, 어떤 기억이 뒷걸음질친다


타래과자

타래과자

 

여인이 친절하게도 뜯어내준 것은 내 옷 소매에 빠져나와 있는 실밥이 아니라 머리카락이었구나 후두둑 뽑혀나간 자리에서부터 내 좁은 이마는 벗겨져 작은 정원이 되고 밤이 되면 수풀 사이에 숨어 짐승 소리를 내며 우는 풀벌레들 똥을 누러 들어가는 여인의 뒤를 밟으며 요란해지는 숨소리가 실은 내 발소리였구나 옷이 아니라 내 실밥이 풀리는 소리였구나 한 올 한 올 해체되어 어느새 팔 없는 조끼가 되어버린 내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부른 이름은 오래 전 파산한 기억의 상표 시뿌연 먼지 때문에 여급들이 똥 대신 실타래를 싸며 죽었다는 열악한 공장 안에는 여인이 전등불 하나 켜놓고 앉아서 콧노래를 부른다 내 머리카락들을 모아다가 한 쌍의 아담한 신발을 뜨는 줄 알았더니 요트라며 웃는구나 밑을 닦고 변기에 띄워 보낼 거라고 으쓱하는 그녀의 어깨를 물어뜯으려고 보니 사실은 석고흉상이었구나 내리쳐 박살을 내보면 안에는 난파되어 있는 대머리 가발이 하나(이러니 변비에 걸리지) 이마에는 촌스러운 광고문구가 수놓아져 있다 ‘실없는 웃음을 흘리면 나중에 숱 없는 아이를 낳는데요’ 


냄새 잡동사니

죽어가는 것의 냄새를 맡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개는 밤새 앓았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자꾸 흩어지는 숨을 그러모아가면서도 눈짓 한 번 주지 않고 누운 채였다. 화장실까지 걷지를 못해서 아무데나 오줌을 지리고 있는 처지였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풍선처럼 생기가 세어나갔다. 개는 한번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다. 휘어지고 망가져버린 발을 핥으면 냄새가 났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불안해서 이불을 더욱 꼬옥 덮었다. 밖에서는 할머니가 화장실로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돌 잡동사니




소재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나의 소재가 되는 것들이다

사상

나는 옳지 않다
가 나의 사상이다

잡동사니


봄의 선율


갇히다

네이버 오늘의 비디오. 이런 서툼이 좋다. 서툰 자가 기를 써서 만들어낸 서툰 무언가.
익혀나가고, 익숙해져가면, 이런 서툼은 다시는 자기를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이거 어떡하냐 ㅋㅋㅋㅋㅋ 씨발

우라라라라 잡동사니

커피가 쓰다
설탕을 한포대를 부었는데도 커피가 맑다
나는 철철 넘치는 커피를 타고 방을 떠돌았다
둥둥
뭐라는거야

유리

유리*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집어던진 사진에서

너는 죽은 뿌리처럼 벽에 기대어 있었지

앙상한 다리를 내놓고 눈을 감고 있었지

숨소리에도 부서질 것 같아서 나는 너에게

단 한마디도 떠먹여 본 적이 없으니

너는 내가 살아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가구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겠구나

아무 때라도 네가 내 속을 열어보면 창문이 하나 트여있겠지

서리 낀 그 창문 너머로는 날이 저물지 않겠지

네가 머리라도 쓸어 올리는 날에는

아직 찍어주지 않은 발자국들이 뚜벅뚜벅 네 손을 찾아 머리카락 속을 헤집고 다닐지도 모른단다

대신 노랗게 저물어가는 사진 속에서 그렇게도 울지 못해 지치면 찾아오렴

 

이 넓은 밤 한 켠에 숨겨놓은 내 척추 한 칸을

네 방으로 내어 놓을 테니 자고 가려므나



*노을의 방언(강원)


쓰라. 써야한다.

일단 스펙터클이 된 타인의 불행에 사로잡히면 찌꺼기처럼 어떤 감정이 우리에게 들러붙는다. 목구멍 안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하지만 이물감 외에는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는 생선가시 같은 것. 고통이라기보다는 불편함을 주는, 우리 내부의 타자.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슬퍼한 뒤에야 우리는 우리 안의 이 타자를 애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리 충분한 애도로도 그 타자는 해소되지 않는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그냥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 이렇게 견디기 위해서 작가들은 소설을 쓰고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고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디기 위해서 사람들은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애도를 완결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날마다 읽고 써야만 한다.

[오직 매일 쓰고, 다시 쓸 때에만 문학은 애도할 수 있다.] 김연수, 2010 문학동네 봄호 中


동거

동거

그리고 나는 일언반구의 언질도 없이 애인의 방을 나왔다
가로등 불빛 흥겨운 가운데 말쑥한 새벽 공기가 속을 쓸어주었다
모든 돌보지 않는 것이 떠나가듯, 오래간만에 돌아온 나의 방은 낯설었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 서먹거리는 방에게 나는 도리어
네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테냐 하여 훌렁 옷을 벗어버리고는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서늘하던 방바닥이 일순, 체념한 듯
뜨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주 고요한 새벽이었다

박멸

박멸

 

도마뱀

 

벌레가 나왔다

입이 아주 뾰족한 그 벌레에 쏘이면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앓아누워야 했다

나는 날마다 살충제를 뿌렸고

살충제 냄새가 나는 밥을 먹었다

날마다 속이 더부룩하고 눈앞이 노랬지만

내 안에 살충제가 쌓이면

놈들이 나를 물었다가 그 피를 먹고 죽겠지

내가 살충제가 되면

내가 살충제가 되기만 한다면

나는 날마다 주문을 외웠다

 

벌레를 전혀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오히려 나는 불안했다

놈들이 내가 잠이 든 틈을 타 내 몸을 기어 다니고

나를 물어 앓아눕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할 만큼 앓아눕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나는 더 열심히 살충제를 뿌렸고

살충제 냄새가 나는 밥을 씹어 넘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문을 외웠다

내가 살충제가 되면

내가 살충제가 되기만 한다면

 

그러던 어느 날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버거울 만치 앓아누운 그날

노랗게 소용돌이치는 천장에서 벌레가 기어 나왔다

놈은 벽을 타고 내려와 내 몸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더니

그 뾰족한 입으로

내 뺨을 콱 물고는 유유히 피를 머금고 사라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발악을 하며 방바닥을 기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입에서는 살충제 냄새가 났다

 


Rove you So much That Make me Sick 잡동사니

사랑한다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않습니까?
사람이 시가 될 수는 없지요
시는 시로써 써야 합니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과는 힘이 듭니다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저는 시가 아닙니다
코를 고는 사람이구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The Pillows - Thank you My Twilight 음악


궤적

궤적

-도마뱀

1 그대 이야기


대의 생김새에 대하여서는 더이상 일말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대의 생년월일은 그대에게 맞지 않는다
나와 나의 아비는 오래 걸을 준비를 마치고
우리, 엇갈리지 않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엇갈린 시간을 살며
언제나 우리, 서로 알고 있는 얼굴을 하고 지나가는
박제된 어느 시간의 연속성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담백한 위트를 공유한다


2 러브레터

그녀를 좋아하여도 보지만 도대체 그녀가 나같은 것을 마주 좋아하여 정이 통하리라고는
조금도 예측할 길이 없다 글씨가 기이한 것은 불을 끈 방에서 글을 쓰는 습관이
들어서 그리합니다 그녀에게 소위 러브레터라도 보냈다가는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 먹을 길이 없어 문의하러 왔다고 할까봐 나는 아무 휴지라도 주워 내 마음을 담은
글귀를 예의 그 어둠에다 휘갈기는 양 일필지휘로 일갈하고는 과연 나만 알아볼 법 하다
그녀의 겉옷 안 주머니에다 숨기고는 짐짓 점잔을 빼며 모른 척을 하여 보는 것인데
비내리는 길을 거슬러 가는 걸음들마다 가슴이 꺼멓게 물든 이유는 움직이지 않는
약속인가? 다가오는 기다림인가?


3 *

홀로 있어버릇함으로써 사람은 음흉하여집니다
아주 빈도가 낮은 그러나 치명적인 몇 차례의 실수가 저를 좌우합니다


4 사형

늦은 밤 미명을 더듬어 소변을 보러가는 그 길은 조금도 내게 익숙하지 않음에도
길을 잃지 않는 것과 점등하였을 때 벌컥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조금도 놀라지 않고
소변을 누는 내가 어째서 신기하지 않는가?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길가에서 털을 고르는 개도 제 더러움 때문에 분주하니
나를 벨 때 내 음모(陰毛)는 베이지 않게 하라


5 궤적

나는 부러 내 가방을 저기 두고는 여기 주저앉는다
가방의 저기와 나의 여기서부터 나는 눈을 감고
상관 없다는 포즈를 취하여 본다
나의 눈은 완전히 덮히지 않고 중간즈음을 가로막고서
막의 밑으로 어지럽게 움직이는 발들을 억압한다
이별하지 않는 작별을 고하는 그 무대를 늘 똑같은 췌적을 그리며 지나가는
결국은 내가 알고 있는 얼굴들이 내 가방을 메고
내가 알고 있는 거리를 활보한다

수신되지 않는 주파수
담백한 위트를 공유한다


눈(雪)

눈(雪)

         
                        -도마뱀

 

더위, 혼곤한 더위 속에서 세포 단위로
냉기를 갈구할 때에도 한 조각
온기를 고수하는 부분은 있다

이불에서는 깃털이 자꾸만 빠지고 있고
깃털이 그리는 아주
포멀Formal한 궤적을 따라 온기가 수척하여 가는 것을

알맞은 습도와 익숙한 내음
천장은 타인의 그림자를 아로 새긴다

더위, 이 침입당한 더위 속에서
이불에서는 자꾸만 깃털이 빠지고 있고
날아가지 못하는 꿈의 위로 흩날리는

그 포멀한 궤적을 따라서는
차마 형상을 이루지 못하고 비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정도의
온기가 적당하다

그림자를 아로새긴 천장이 수척하여도 한 조각
포즈를 고수하는 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사진 잡동사니

뻔히 그대로인 당신은 사진이 바랬구려

말리려고 펴놓은 우산에서는 아직

빗소리가 마르지 않아 소란하오

아무래도 척도가 조금 어긋난

기준을 지니고 있는 듯하여 나는 심히 곤란하오.

우리에게는 차마 더이상 눈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비가 될 정도의 온도이면

적당할 사이일 듯 싶소

 

하품보다도 거대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지 않겠소?

우리는 오래 편지를 씁니다

우리 그때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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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마뱀

뻔히 그대로인 당신의 사진은 빛이 바랜 탓에
말리려고 펴놓은 우산에서는 아직
빗소리가 마르지 않아 소란합니다

아무래도 척도가 조금 어긋한 기준을 지니고 있는 듯하여
저는 심히 곤랍합니다

우리에게는 차마 눈을 이루지 못하고
비가 되어 무너져 내리는 정도의 온도이면
적당한 사이지 않겠습니까?

하품보다도 거대한 글을 쓸 수 있다면
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우리 그때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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